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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들만 아는 것들

2002년 월드컵


지금 베트남엔 박항서 감독의 인기가 드높다.

박항서 감독은 축구 불모지의 땅 베트남에 혜성처럼 등장해 

베트남 축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야말로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 얼마전에 베트남에 일어난 것이다.

박항서 매직 이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아시안컵 4강에 스즈키컵 우승은 베트남으로는 역대급의 대기록이며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거란 추측이 많다.


박항서의 마법같은 지휘로 인해 베트남의 절대적 인기를 한몸에 받고있는 박항서 감독.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왠 퇴물 외국인 감독을 던져놓았냐는 등의 갖은 비판과 비난의 소리가 끊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좌절하지않고 묵묵하고 헌신적인 노력끝에 완벽한 결과로 국민들에게 보여주어 

마침내 베트남의 국민 영웅까지 된다.

그렇다. 어디서 본것 같지 않은가?

마치 한국의 2002년 국가 대표팀 감독 그분 하고 신기하게만큼 똑같다.

 


2002년 사진 맞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17년전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끝없는 한국 축구의 부진으로 고심이 많았던 당시 축구계는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외국인 감독을 고용하였다.

당연하게도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필이면 투입초기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수해야했다.

심지어 일부 경기는 5-0으로 패해 오대영 감독이라는 오명까지 있었을 정도였으며

각종 신문에서는 히딩크의 비난의 기사가 들끓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이러한 비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앞세워 선수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켰고

베스트 맴버들도 직접 선출한다.

그 결과 2002년 믿기지 않는 기적이 일어난다.


16강만 가도 다행이라는 여론과 달리 

태극전사들이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강호들을 하나 둘 무찌르기 시작한 것 이다.

그 당시 분위기는 98년 월드컵에 실망을 크게 한 전력이 있다보니 

사람들은 솔직한 말로 큰 기대도 하지 않았던 분위기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으로는 기적과도 가까운 16강 문턱 진입에 국민들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16강 간 시점부터 그야말로 전국이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이 그야말로 축구로 하나가 되었다.

16강도 힘들어 빌빌 거리던 한국이 16강을 가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거스 히딩크

그의 이름은 이제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어느새 한국 축구계의 국민 영웅으로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히딩크 아니었으면 평생 2군에 있었어야 할 박지성의 일화도 유명하다.

흙속의 진주를 히딩크가 찾은 셈.



16강도 사실 그 당시로는 엄청나게 대단했던 업적이라 

군중들은 미친듯이 환호했다. 

이 당시 한국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온 국민이 축구로 하나되어 

전국은 이미 2002월드컵의 열기로 가득찼다.


그런데 왠걸? 

16강도 감지덕지인데 8강까지 간것이다.

이 날은 대국민이 하나되어 대한민국을 외쳤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던 일부 사람들도 완전히 한국축구에 매료되었으며

대~한~민~국을 다함께 목이 터지도록 밤새도록 울부짖었다.


2002년 월드컵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큰 축제의 장으로 발돋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8강전인 스페인전에서 역대급의 대사건이 터지고 만다.

한국과 스페인은 초박빙의 대결로 승부차기까지 갔다.

이 시기의 한국은 고요하였다. 

이 결과에 따라 4강의 문턱에 오를지가 결정되기 때문.

그런데 그때 또 다시 기적이 일어났다.


바로 이운재 키퍼가 골을 멋지게 막은것이다!

이때 각 동네는 우뢰같은 함성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왔다고 한다.

필자도 미친듯이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홍명보의 마지막 슛의 성공으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4강 대기록을 세웠다.

축구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런 감격의 결과가 나오다니 !!

당시 사람들은 보고도 믿기지 않았을 정도이며 서로의 볼을 꼬집어 보기까지 했다 한다.


비록 아쉽게 4강까지가 한계였지만 16강도 빌빌거리던 당시 한국에겐 그야말로 업적이나 다름없었고

과거 한국의 축구위상을 생각한다면 사실 4강도 일어나기 불가능했던 기적과도 같은 일을 

그 당시 국민들은 분명하게 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

이 시기를 마지막으로 

2019년 지금까지도 이와같은 기적은 없었다. 

2002년은 그야말로 한국축구의 리즈시절.



다만 2002년의 성적이 워낙에 대단했던 탓인지 

그만큼 기대치도 덩달아 높아져 

이후 월드컵은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

사실 16강도 겨우 들어가던 시절을 생각하면 많이 발전을 한것인데

2002년의 임펙트가 워낙에 강렬해서...... 본의 아니게 비교대상이 되곤하였다.



아! 2002년이여!

그 불타오르던 때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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